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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the Universe
박용숙 (동화작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외계인'을 '공상 과학 소설 따위에서 지구 이외의 천체에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지적인 생명체 = 우주인'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평범한 사람과 다른, 소위 괴짜라 할 수 있거나 사회적인 통념에서 살짝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두고 '외계인'이라 하곤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처럼 평범하지 않은, 이른바 사회적으로 정해놓은 기준과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외계'라는 단어를 붙이게 되었을까? 우리 속에서 살고 있는 '진짜' 외계 종족의 간담이 서늘해지게 말이다.
이건 다 일찍이 크립톤 행성 출신임을 숨기고 지구에서 평범한 기자로 살았던 '클라크 켄트' 때문이 아닐까 하고 혼자 멋대로 추측해 본다.(1) 클라크 켄트라는 이름은 몰라도 파란 쫄쫄이에 빨간 팬티를 입고 망토를 휘날리며 세상을 구하는 슈퍼맨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초월적인 힘(혹은 능력)을 가진 존재의 대명사인 슈퍼맨(Superman)이 외계에서 온 종족이기에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 같은 슈퍼맨의 활극에 열광하고 그 정도의 남다름을 바라는 지구인에게 '나는 외계에서 왔습니다.'하고 커밍아웃할 용기 있는 외계 생명체는 있을까?
슈퍼맨이야 '나는 슈퍼(super)한 능력을 가졌소이다'라고 가슴팍에다 커다랗게 'S'를 써놓고 자랑하고도 남는 능력을 갖췄지만, 외계 생명체에게 그러한 능력이 필수 사항은 아닐 것이다. 우리 주변에 사는 외계 생명체에게 그 같은 능력을 바라는 건 인간의 선입견 혹은 바람일지도 모른다. 영화 <맨 인 블랙>에서 보았듯이 평범하고 평화롭게 지구에 정착하고 살고자 하는 외계 생명체가 다수라고 생각한다.(2) 그러니 이들은 정체를 숨긴 채 우리 주변에 분명히 살고 있을 거다. 최근 어린이 청소년 SF에서도 우리 속에서 살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외계 생명체를 만날 수 있다.(3)
『홈스테이는 지구에서』(장한애, 웅진주니어 2022)에서는 여러 별에서 온 우주 여행자들이 공유수와 엄마가 운영하는 홈스테이로 온다. 이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지구를 관광하면서 여러 가지 사건을 벌이는데 공유수는 이들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애를 쓴다. 그런가 하면 『다락방 외계인』(이귤희, 해와나무 2021)에서는 삼촌 집에서 살게 된 노아가 다락방에서 지구로 피신 온 외계 생명체와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외계 생명체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정작 이들의 정체가 세상 밖으로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는 지구인인 공유수와 노아이다. 공유수와 노아는 외계 생명체를 대하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태도와 그에 따르는 문제를 잘 알고 있기에 이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숙주인간 천승주』(김경은, 열림원어린이 2023)에서는 외계 생명체인 제로가 아예 작정하고 지구인 천승주의 몸에서 살고자 온다. 승주의 행복 지수가 자신의 생존에 영향이 있기에 제로는 승주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하늘 세숫대야 타고 조선에 온 외계인 나토두』(송아주, 도토리숲 2022)의 나토두는 사고로 지구에 불시착한다. 과학자로서의 소명으로 지구 환경을 연구하면서 자신을 살리고 친절을 베푸는 산골 친구들과 마을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들이 지구에 온 목적과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자신들과 관계를 맺은 지구인들의 손을 놓지 않고 지구인들도 이들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인』(천선란, 창비 2021)에서는 평범하게 살던 나인이 출생의 비밀과 함께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일어난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외계에서 온 종족임을 밝혀야 하는 문제에 처하게 된다. 「402호에 이사 왔대」(문이소, 『극복하고 싶지 않아』 수록작, 마음이음 2022)에서의 계인 역시 자신이 처한 위기에서 구해줄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이 작품들에도 이들이 지구인이 아님을 알고도 기꺼이 함께하는 친구들이 등장한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오든 처음 만나든 상관없이 기꺼이 손을 내미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외계 생명체들이 지구로 오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관광, 학습, 정착(이주)이다. 이들이 지구에 오는 목적도 다르며, 이들에게 이렇다 할 만한 특별한 능력은 없다.(4) 그저 조용히 지구인들 속에서 잠시 머물거나 살기를 원할 뿐이다. 또한 이들과 함께하는 지구인들도 이들을 기꺼이 친구, 이웃으로 여기며 서로 도우며 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와 다름을 기꺼이 수용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렇다면, 작품 밖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떨까? 외계에서 왔다고 커밍아웃하는 친구나 이웃이 있다면 주저 없이 받아 줄 준비는 되어 있을까? 레비나스는 타자를 받아들임은 이론적 활동이나 기술적, 실천적 활동이 아니라 윤리적인 관계에 달려있다며 "주체가 주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은 지식 획득이나 기술적 역량에 달린 것이 아니라 타인을 수용하고 손님으로 환대하는 데 있다"고 했다.(5)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를 향한 마음이나 자세에 관하여 긍정하는 바이지만 한편으로 주체로서의 '나'가 또 다른 주체인 '너'를 수용하는 것이 굳이 사회적인 윤리와 양심이 필요한 일인지 자문해 본다. 작품에 등장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처럼 타자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는 용기와 기꺼이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머지않아 올 그날을 위해서 말이다. 👽
(1) DC 코믹스 만화 원작의 동명 영화.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으로 1978년에 제작. 우리나라에서는 1979년 3월에 개봉. 이후 <슈퍼맨 2>(1980), <슈퍼맨 3>(1983), <슈퍼맨 4>(1987)가 개봉했다. (위키백과 참고)
(2) 로웰커닝햄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SF 액션 첩보 영화. 토미 리 존스, 윌 스미스가 주연, 배리 소넨필드 감독으로 1997년 제작. 같은 해 우리나라에서 개봉. <맨 인 블랙 2>(2002), <맨 인 블랙 3>(2012)가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위키백과 참고)
(3) 2022, 2023년 보슬비 SF 예비 후보작을 중심으로 살폈다.
(4) 나인에게는 식물에서 태어나 식물과 교감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5) 『타인의 얼굴』 32쪽. (강영안, 문학과지성사, 2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