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이 걱정한 미래
올해는 이오덕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갈수록 혐오와 폭력, 허위의 언어가 판치고 그에 대한 자정 작용을 잃어가는 요즘, 이오덕은 더욱 그리운 이름이다. 『이오덕 일기』를 읽다가 그가 포착한 디스토피아를 발견한다. 1990년대에 쓴 일기이다. 1980년대 민주화 항쟁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고, 성장과 혁신에 대한 믿음이 강고하던 때, 이오덕은 자꾸 절망을, 멸망을 말한다. 도대체 이오덕은 그때 무엇을 보았을까?
하나
어젯밤에 현대중공업 노조에서 만들어 내는 <민주항해>5,6월 호에 있는 ‘반공 소년 이승복은 조작이었다’는 글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이승복 얘기는 전부터 엉터리로 만들어 낸 것인 줄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한 소년과 그 가족을 잔인하게 죽여서 반공 영웅으로 만든 줄은 몰랐다. 이것은 참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고, 인간이란 동물을 도무지 믿을 수 없게 하는 기막힌 일이다. 이 지구에서 인간은 다 없어져야 한다. 그것밖에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도대체 사람에게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1994년 6월 28일 화요일 일기 중에서, 『이오덕 일기4』, 177-178쪽.
둘
성수대교가 무너져서 차들이 떨어져 사람이 48명이나 죽었답니다, 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가 위태롭다고 그토록 말썽이 나도 들은 척도 하지 않던 서울시며 정부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지. 참 기가 막히는 정치요, 기가 막히는 세상이다. 어디 이 일로 그치겠는가? 앞으로도 끔찍한 일들이 연달아 터져 나올 것이다. 오후에 신문을 보니 다리가 중간에 뭉청 내려앉았다. 아침 7시 반쯤에 학교 가는 학생들, 출근하는 이들이 참상을 당한 모양이다. 차가 몇 대나 떨어졌는지,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 아직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 이것이 지옥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 지옥에 가고 있는 것이다.
-1994년 10월 21일 금요일 일기 중에서, 『이오덕 일기4』, 194-195쪽.
셋
권선생은 혼자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한 키로쯤 떨어진 데 고속도로가 지나가요. 글쎄 거기 굴을 판다고 산을 다 망가 뜨려 놨어요. 또 길 닦는다고 높은 데는 깎아 없애고 낮은 데는 돋워 올리고 그게 무슨 꼴입니까?”
“냇물도 다 썩었어요. 옛날에는 버들뭉치, 피리, 부구리…… 얼마나 많았습니까. 지금은 그런 고기 한 마리도 없어요.”
“그리고 요즘 시골에는 사냥꾼들이 자주 옵니다. 총 가지고 다니는 것 보니 아이고 제발 그것들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것들 못 하게 해야 되겠어요. 얼마나 보기 싫은지 모르겠어 요.”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잘못되어 가는 것 바로 볼 수 있게 하는 이야기를 써 주어야겠어 요.”
“그런데 아이들이 내 동화를 읽고 왜 그런 슬픈 얘기만 씁니까, 해요. 아이들은 옛날부터 잘 먹고 잘살았다는 얘기라야 좋아하는 모양인데…….”
“이제 말이 꽉 막혀 버렸으니 언제까지나 그런 얘기만 써 줄 수 없어요…….”
“그렇지요. 그런데 아이들은 히히 웃기는 것만 좋다고 읽지…….”
…(중략)…
“선생님, 이러다가 어찌 되지요? 어떻게 해야 하지요? 선생님이 하시는 우리 말 운동도 글을 쓰고 문학을 하는 사람부터 앞장서 고처야 하는데 조금도 그런 기색이 안 보이니…….”
“가장 반성이 없는 것이 문인들입니다.”
“어떻게 하지요? 교육도 그렇고 문학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하는 데까지 해야지요. 경종을 울리고 비판을 하고 그래도 안 될 겁니다. 이대로 가는 데까지 가다가 혹시 어떤 큰 이변이라도 터져서 가는 방향이 바뀔는지도 모르지요.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가서 망하는 것이지요.”
“망해야 되지요.”
“망해도 빨리 망해야 잿더미 속에 다시 새 목숨이 생겨납니다. 그때까지 그저 해야 할 말을 하는 수밖에 없어요.”
-1994년 3월 22일 화요일 일기 중에서, 『이오덕 일기4』, 165-167쪽.
넷
어느 아이가 길가 땅바닥을 신발로 콱 쾅 밟고 있었다. 왜 그러나 싶어 보니 개미집이다. 새까만 개미들이 난리가 나서 마구 이리저리 어쩔 바를 모르고 쩔쩔맨다.
“너 왜 개미를 그렇게 죽이니? 이건 개미들이 사는 집이야. 개미도 집을 짓고, 먹이를 찾아다니면서 열심히 살아가는데, 이봐, 네가 밟아서 저렇게 죽고, 또 살라고 몸부림치고 하지. 개미도 사람과 같이 목숨이 있어. 그러면 안 돼.”
그 아이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는 그만하면 알아들었겠지, 하고 왔다. 몇 걸음 걸어오다가 돌아보니 또 그 아이가 발로 개미집을 짓밟고 짓이기고 있었다. 다시 돌아가서 “너 내가 한 말 어떻게 생각하나? 너도 누가 와서 발로 마구 짓밟으면 좋으냐?”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없다.
“너 몇 학년이냐?”
“1학년.”
“1학년이면 학교에서 이런 것은 배워야 하는데……. 그러지 마라. 응? 개미도 목숨이 있어서 살아가야 하는 거야.”
나는 그 아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그러지 말라고 달래어 보냈다.
오면서 며칠 전 안동에 갔을 때 권정생 선생이 하던 말이 자꾸 머리에 떠올랐다. 동화고 문학이고 이제는 다 소용없다. 우리 말 살리는 일도 될 수 없다고 한 말이다. 아, 절망. 절망밖에 없는 세상. 이제는 그저 사는 데까지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개미를 짓밟는 그 아이를 내가 어떻게 바로잡겠는가? …(중략)… 오직 자기밖에 모르는 이 사람이라는 괴상한 동물은 다만 멸망을 기다리는 시간밖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다. 멸망밖에!
- 1996년 7월 9일 화요일 일기 중에서, 『이오덕 일기4』, 258-259쪽
3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오덕의 한탄과 걱정을 현실로, 디스토피아 SF로 마주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오덕이 걱정하던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났고, 멸망과 절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산적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참신한 대안을 듣기도, 생각하기도 어려워졌다. 『이오덕 일기』를 읽으면서 그가 절망했던 1990년대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말글을 바로 쓰고, 민족통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때, 교육계는 물론이고 방송국, 헌법재판소, 병원 등 사회 곳곳에서 이오덕 선생님 같은 분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배우며 우리 말글 습관을 성찰하고 고치기 위해 노력하던 때. 절망과 멸망이라는 말이 당연하지 않고 입에 올리기에도 죄스럽던 때. 이오덕은 그때 어떻게 지금을 보았을까?
말하는 대로 쓰고, 말하고 쓰는 대로 행동하는 그였기에 가능한 통찰이었을 것이다. 그는 말을 함부로 하고, 말과 글과 삶이 유리된 문화를 경계했다. 이오덕은 무엇보다 ‘말’을 중시했다. 말은 그 자체로 행동이며, 글과 달리 한정된 공간에 가둘 수 없어 그 파급력을 예상은커녕 상상하는 일조차 어렵다. 사람은 총칼을 쓰지 않아도 말만으로도 죽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많이 아프게 보아왔다. 혐오를 자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시대가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혐오의 말들이 무수히 생산되며 서로 공격하고 죽이는 말 문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 죽이는 말들이 살리는 말보다 더 강하게 몰아치며 우리 사회를 아수라장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이오덕처럼 영혼을 살리는 말을 모색하고, 말과 글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려고 부단히 노력한다면 누구나 투명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실망과 절망을 이기기 위해 지옥과 멸망을 부르짖을 것이다. 그것은 분노의 표현, 곧 상처 입은 양심의 포효이기 때문이다. 30년 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필자가 이오덕의 1990년대를 부러워했듯이 2020년대를 부러워하지 않기 바란다. 하지만 그런 독자가 있다면, 그 역시 준엄한 분노의 일갈을 토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