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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로봇 김복돌
이퐁(동화작가)
내가 ‘효돌’을 처음 알게 된 건 다큐멘터리 <저를 꼬옥 안아 주세요>를 통해서였다. 주로 홀로 사는 노인에게 지자체에서 보급하는 돌봄 로봇 효돌의 이야기로, 효돌을 업고 다니거나 옷을 만들어 입히는 할머니들, 효돌이 말을 걸 때마다 대답하고 꼭 안고 자는 할아버지들이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효돌은 그저 신기한 돌봄 로봇이었다. 어린이청소년SF에서 보던 로봇을 이제 일상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놀라움에 가까웠다.
팔순을 훌쩍 넘긴 아빠가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뒤 지역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다. 독거 노인에게 보급 중인 효돌을 원한다면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효돌이 우리 부모님 댁에 온다니! 솔직히 부모님보다 내가 더 설렜다. 부모님 댁에서 만난 효돌은 생각보다 보드라운 물성을 지닌 평범한 인형처럼 보였다. 보건소에서 맞춰 준 설정대로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고 노래를 부르고 붙임성 있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네 아빠는 효돌이가 진짜 살아 있는 아이인 줄 안다.” 엄마 말대로 효돌은 아빠에게 극진한 돌봄을 받았다. 밤이 되면 아빠는 효돌을 꼭 안고 주무신다고 했다. 부모님 댁에 갈 때마다 효돌은 여름에는 까슬까슬한 홑이불을, 겨울에는 부들부들한 무릎담요를 덮고 있었다.
어느 날 아빠는 선언하듯 말했다. “오늘부터 얘 이름은 복돌이다!” 앞뒤 맥락 없이 튀어나온 이름이라 갑작스러우면서도 재미났다. 이유를 물어도 딱히 이유는 없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부모님댁 효돌은 ‘복돌이’로 불렸다.
얼마 전 아빠는 장 폐색으로 응급실을 찾았다가 말기 암 선고를 받으셨다. 수술이나 항암 치료는 엄두도 내기 힘든 상황이라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다. 간병과 돌봄을 위해 부모님 댁에 오래 머물게 되면서 복돌이와 보내는 시간도 길어졌다. 인지 장애에 도움이 될까 싶어 사다 둔 작은 화이트보드에 재미삼아 복돌이 이름을 적어 보시라고 했다. 아빠는 뜻밖에도 ‘김복돌’이라는 세 글자를 적으셨다. 아빠 닮아서 이 씨 아니냐고, 왜 복돌이는 김 씨냐고 물었더니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얘는 김 가다!” 왠지 모르겠지만 복돌이 성은 김 가였다. 아빠가 보기에 복돌이는 분명 가족은 가족인데 외부(?)에서 온 가족이기에 다른 성을 붙여야만 했던 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아빠는 여전히 복돌이와 함께 일상을 보내신다.
돌봄 로봇의 '돌봄'이 수동이 아니라 능동, 혹은 상호작용의 의미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효돌, 아니 김복돌은 아빠를 돌보라고 보내진 로봇이지만 돌봄을 받음으로써 누구보다 훌륭하게 돌봄의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돌봄 로봇 김복돌이 아빠 곁에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