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론! 이거 신청해 보지 그래?
캐티가 말을 걸었을 때 나는 나사 숫자를 세고 있었다. 백 스물 하나였나? 스물 둘이었나? 헷갈렸다.
- 너튜브 <나 혼자 산다> 말이야. 100시간 동안 집 바꿔 살기 프로젝트 진행중이거든.
내가 대꾸를 하거나 말거나 캐티는 말을 이었다. 난 또 뭐라고. 열 셋, 열 넷……, 캐티를 힐끗거리며 나사 헤아리는 게 쉽지 않았다. <나 혼자 산다>에는 다 좋은 집만 나온다. 우리 집은 쫌…… 곤란하다.
- 그런데 이번 해외 특집에서는 아이슬란드 집이랑 바꿔 살기 한다는데? 너 아이슬란드 가보고 싶어 했잖아?
아이슬란드? 나는 고개를 들고 신청 방법을 물었다. 나사 세기는 집에 가서 하기로 했다.
오늘 운행 끝. 엘리베이터 앞에 표시등이 들어와 있었다. 아직 오후 6시도 안 되었는데 벌써 운행 정지라니! 임대 아파트의 에너지 절약을 위해 하루에 엘리베이터가 실어나를 수 있는 무게가 철저히 제한된다. 그래서 집에 오기 전에 수집한 나사를 센터에 제출하는 편인데, 하필 나사 파우치를 그대로 들고 온 날에 운행이 일찍 끝나버린 것이다. 그래도 우리집은 32층이니까 다행이다. 58층이 아닌 게 어디람.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지만 계단을 올라갈수록 파우치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높이 올라가면 중력이 줄어드는 게 아니었어? 헉헉.
집에 와서 파우치를 던져놓고 안마의자로 내 몸도 던졌다. 모든 게 잠잠했다. 처음부터 그랬다. 내 인생의 처음은 모르지만 기억할 수 있는 때부터, 나는 아무 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인간과 비인간이 다같이 다닐 수 있는 통합사이버대학에 다니며 로봇들이 길거리에 흘린 나사를 줍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혹시라도 아이슬란드에 갈 수 있다면 아르바이트를 쉬어야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갑자기 무언가가 내 다리를 툭툭 치는 기척이 느껴졌다. 삼촌인가? 삼촌의 손길은 훨씬 둔탁하다. 플랜티인가? 플랜티는 가끔 나에게 화분에 주려던 물을 흘리긴 해도 툭툭 친 적이 없다. 스퀘어는 항상 깃발 만드느라 바쁘고, 에너자이저는 물레방아 돌리느라 바쁘고, 뱅갈고무나무, 방울토마토, 유칼립투스와 다육이들은 화분에 담겨있어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다들 어디 갔지? 둘러 보니 삼촌 충전기가 비어있고 물레방아도 멈춰 있었다. 플랜티와 스퀘어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지만 삼촌은 거의 누워서만 지내는데, 보이지 않으니 겁이 덜컥 났다.
그때 다리를 툭툭 치던 무언가가 뒤로 넘어졌다. 처음 보는 개체였다. 살펴 보니 네 발로 기어다니는 자그마한 로봇으로 보였다. 들어 올리자 네 발을 바둥거리는 게 은근히 귀여웠다. 방금 전까지 겁내다가 귀여워하다니, 이런 감정이 동시에 들어도 되는 건가? 무서우면서 귀여우면서…… 배도 고팠다. 어느새 밤 12시가 되었다.
우르르. 문이 열리고 로봇들이 돌아왔다. 어딜 다녀온 거야?
- 아, 오늘 집회가 있어서 다같이 나갔었어.
‘차별금지법 5차 개정 촉구!’라 쓰인 깃발을 내려놓으며 스퀘어가 말했다. 니네가 한꺼번에 나가니까 엘리베이터 운행이 빨리 멈췄잖아!
- 누가 또 선인장 화분을 버려놓은 거 있지? 그래서 주워왔어.
플랜티는 휠체어에 앉은 삼촌이 끌어안고 있던 화분을 가리켰다. 햄스터 로봇 에너자이저는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듯 물레방아로 폴짝 뛰어가서 쳇바퀴를 돌리기 시작했다.
- 캐티가 그러던데 너 <나 혼자 산다> 신청할 생각이라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혼자 살지 않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휠체어에 앉은 채로 방전된 삼촌에 충전선을 연결하자, 삼촌은 ‘잘 작동하는 로봇을 로봇 폐기장에 버리는 것도 모자라서 인간 아기를 로봇 폐기장에 버리다니!’라고 말했다. 요즘 부쩍 저 말을 반복해서 말하곤 한다. 삼촌은 로봇 폐기장에 버려진 나를 살려서 키웠다. 삼촌은 그때부터 누가 봐도 멈추기 직전의 할아버지 로봇이었으나, 나에게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내가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한다는 걸 알게 된 후엔 수어를 할 줄 아는 캐티의 도움을 받았다. 캣맘 로봇인 캐티는 길거리 로봇들에 대해 잘 알았다. 오갈 데 없는 스퀘어와 플랜티를 우리집으로 보낸 것도, 삼촌이 거의 하루 종일 골골대며 태양광 충전으로는 부족한 상태가 되자 충전용 물레방아를 돌릴 에너자이저를 소개해 준 것도 캐티다.
- 론, 너야말로 혼자 사는 사람이잖아. 어차피 ‘혼자’는 인간 기준이야.
- 맞아. 너는 부모, 조부모, 형제자매 일가친척, 룸메이트는커녕 친구도 없잖아.
- 너 오로라 보고 싶다고 했잖아. 꼭 신청해서 다녀와.
로봇들이 시끄럽게 손짓 발짓을 했다.
- 그리고 아기 로봇 이름 좀 지어줄래?
- 우리가 재활용품으로 조립한 로봇인데, 오늘 낮에 완성됐어.
- 아이슬란드 가게 되면 아기 로봇도 데려가 줘. 우리 아기 넓은 세상 보여 주게!
- 오로라! 벌써 기어다니는구나.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헐, 아기 이름 나더러 지으라더니 마음대로 ‘오로라’라고 부르는 거야?
공기청정기 바람에 유칼립투스 잎이 흔들렸다. 나는 다른 걱정이 생겼다. 아이슬란드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우리집에 와도 적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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